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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와 삶의 리듬(고요한 물속에서 내면을 탐색하다) 내가 낚시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물고기를 잡기 위함이 아니다. 물속의 고요함과, 그 고요 속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의 리듬을 따라가고 싶기 때문이다. 낚시를 시작할 때마다 나는 마치 내가 세상의 모든 소음에서 벗어나고, 내면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낚시대 끝에 달린 찌를 응시하며, 나는 그 작은 점에서 물속의 세계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리듬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물속은 고요하지만 그 속에 흐르는 시간은 끊임없이 변한다. 흐르는 물처럼 내 삶도 흐르고, 때로는 마치 고요한 바람처럼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 모른 채 흘러가기도 한다. 그러나 낚시를 하며 기다리는 그 순간, 나는 내 삶의 리듬을 다시 찾게 된다. 찌가 물속에 잠기기 전에, 나는 그 기다림.. 2025. 6. 14.
낚싯대 그림자 너머, 아버지의 숨결 바람이 스치는 물결 위로 낚싯대 하나가 그림자를 드리운다. 물빛은 오후 햇살에 부서지고, 나는 그 물가에 앉아 또 한 번 오래된 풍경을 떠올린다. 아버지와 함께한 어느 여름의 강가, 조용히 흐르던 물, 그리고 그 옆에 놓였던 낡은 찌통과 무거운 은어낚싯대. 그 기억은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마음 한 켠에 고요히 남아 있다. 나는 그 자리에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있었고, 침묵 속에서 수많은 말을 나누었다. 낚시는 말로 하는 일이 아니었고, 그 시절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았지만 언제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것이 가장 깊은 동행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안다. 물 위에 떠 있는 찌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나는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무뚝뚝했던 손길, 담배를 물고 있었던 입가의 주름,.. 2025. 6. 13.
낚시꾼의 손등 위에 내려앉은 계절 물소리는 계절마다 다른 목소리를 낸다. 봄에는 풀잎이 자라는 소리처럼 설레고, 여름에는 햇살에 닿은 피부처럼 뜨겁고 명랑하며, 가을에는 바람이 지닌 기억처럼 쓸쓸하게 흔들리고, 겨울에는 침묵이 침묵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조용하다. 나는 그 물소리 속에서 낚시를 한다. 낚시란, 물을 듣는 일이고, 그 물 속에 숨어 있는 계절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다. 어느 계절이든 손등 위에 내려앉는 바람의 감촉은 낚시꾼에게 특별한 언어로 다가온다. 손등에 머무는 햇살, 손가락을 스치는 물안개, 손목을 감싸는 이슬, 모든 것이 계절의 쪽지처럼 건네진다. 낚시꾼은 그 모든 감각을 기억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 손등 위의 감각들로 오래된 시간을 꺼내 본다. 아버지의 손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손은 바람을 기억하고.. 2025. 6. 12.
별빛 아래서 묵념하는 낚시꾼의 밤 밤하늘은 매번 다르다. 같은 별자리도 계절마다 각도를 달리하고, 어느 날은 구름에 가리고, 어느 날은 또렷하게 내려다본다. 낚시터에서 밤을 맞이하는 순간, 나는 그 다름을 체감한다. 별이 많은 날이면 마음도 조금 밝아지고, 별이 숨어버린 날이면 생각들이 깊어진다. 찌 하나가 조용히 물에 잠긴 고요한 밤, 나는 별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는가. 무엇을 낚고 싶어서 이 한밤중에 이 물가에 앉아 있는가. 가만히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오래전에 스치듯 지나간 인연들, 나를 웃게 하거나 울게 했던 사람들, 혹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들. 그 모두가 어두운 물속 어딘가를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느껴진다. 내가 낚시를 한다는 건 어쩌면 그런 기억.. 2025. 6. 11.
그림자와 함께 낚시하는 법 사람은 누구나 그림자를 가지고 산다. 그것은 햇빛이 있을 때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각도에 따라 늘 뒤따르는 어떤 형상이다. 낚시를 하러 물가에 나설 때면 나는 종종 내 그림자를 바라본다. 그것은 언제나 나보다 반 발짝 앞서거나 늦게 걷고, 때로는 긴 다리를 늘어뜨리며 물 위로 넘실거린다. 나는 그런 그림자에게 묻는다.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낚시를 할 것인지. 물고기를 만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조용히 자신과 대면하고 싶은 것인지.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때론 내 마음보다 더 정직한 진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낚시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만든 그림자와 함께 한 자리에 앉는 일이다. 물 위에 비친 그림자 속에서 나는 과거의 나를 보고, 잊힌 사람을 보고, 그리고 사라진.. 2025. 6. 10.
비 내리는 날, 물비린내와 함께 떠오른 마음 비가 오는 날이면 낚시터는 더욱 조용하다. 빗방울이 수면 위에 만들어내는 작은 원들은 끝없이 퍼지다 어느새 사라지고, 그 다음 물방울이 또다시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 연속적인 파문 속에서 나는 묘한 평안을 느낀다. 누군가에게는 짜증나는 날씨일 테고, 또 누군가에겐 우산 속의 불편함일 테지만, 내겐 이 비 오는 날이야말로 가장 감정이 짙어지는 시간이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우비를 덮어쓰고, 그냥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속도는 현저히 느려지고, 나는 자연이 만든 감정의 한복판에 앉는다. 비가 내리는 날의 물비린내는 유독 더 강렬하다. 흙이 적셔지는 냄새, 나무들이 비에 씻겨내려 가볍게 바람에 흔들리는 냄새, 그리고 수면 아래서 올라오는 미세한 수초 냄새, 물고기의 비늘 냄새. 그 모든.. 2025.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