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대 그림자 너머, 아버지의 숨결
바람이 스치는 물결 위로 낚싯대 하나가 그림자를 드리운다. 물빛은 오후 햇살에 부서지고, 나는 그 물가에 앉아 또 한 번 오래된 풍경을 떠올린다. 아버지와 함께한 어느 여름의 강가, 조용히 흐르던 물, 그리고 그 옆에 놓였던 낡은 찌통과 무거운 은어낚싯대. 그 기억은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마음 한 켠에 고요히 남아 있다. 나는 그 자리에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있었고, 침묵 속에서 수많은 말을 나누었다. 낚시는 말로 하는 일이 아니었고, 그 시절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았지만 언제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것이 가장 깊은 동행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안다. 물 위에 떠 있는 찌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나는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무뚝뚝했던 손길, 담배를 물고 있었던 입가의 주름,..
2025. 6. 13.
비 내리는 날, 물비린내와 함께 떠오른 마음
비가 오는 날이면 낚시터는 더욱 조용하다. 빗방울이 수면 위에 만들어내는 작은 원들은 끝없이 퍼지다 어느새 사라지고, 그 다음 물방울이 또다시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 연속적인 파문 속에서 나는 묘한 평안을 느낀다. 누군가에게는 짜증나는 날씨일 테고, 또 누군가에겐 우산 속의 불편함일 테지만, 내겐 이 비 오는 날이야말로 가장 감정이 짙어지는 시간이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우비를 덮어쓰고, 그냥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속도는 현저히 느려지고, 나는 자연이 만든 감정의 한복판에 앉는다. 비가 내리는 날의 물비린내는 유독 더 강렬하다. 흙이 적셔지는 냄새, 나무들이 비에 씻겨내려 가볍게 바람에 흔들리는 냄새, 그리고 수면 아래서 올라오는 미세한 수초 냄새, 물고기의 비늘 냄새. 그 모든..
2025.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