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의 침묵
강은 말이 없다. 강변은 침묵 중이다.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으면서도 하루 종일 이야기를 건넨다. 그 속삭임은 바람을 타고 물살을 따라 퍼지며, 누군가의 가슴 깊숙이 닿는다. 나는 그런 강가에 홀로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지만, 어쩐지 마음은 시끌시끌하다. 묘하다. 세상 가장 조용한 장소에서, 내면의 가장 큰 소리들이 들려온다. 강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데, 나는 그 앞에서 무언가를 고백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침묵과 마주하는 순간, 말보다 더 깊은 감정들이 피어오른다. 낚시는 그런 시간이다. 침묵과 친해지는 법을 배우는 시간. 나는 그 속에서 말보다 진한 대화를 한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해주는 강에게 털어놓는다. 바람이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마음도 이따금 흔들린다. 과거의 말실수들, 하지 못한 고백, 끝내 이별이 되어버린 인연들. 그 모든 것들이 물 위에 그림자처럼 일렁이고, 나는 그 위에 찌 하나를 조용히 띄운다. 강변의 침묵은 무겁지 않다. 오히려 그 속은 여백으로 가득 차 있다. 말하지 않아서 생기는 거리보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울림이 더 깊다. 어떤 날은 찌가 움직이지 않아도 만족스럽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고맙다. 그 무위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조율한다. 낚싯대를 쥔 손끝에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은 내 안의 감정과 닿아 있고, 그 감정이 비로소 침묵을 통해 형태를 갖는다. 어릴 적 나는 말이 많았다. 무언가를 설명하려 애썼고, 침묵을 불편해했다. 그러나 강가에 앉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말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조용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낚시터에서 마주치는 노인의 눈빛이 그렇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자의 고요한 시선. 그 눈빛은 이 세상의 많은 소음보다 더 큰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나도 언젠가 그런 침묵을 지닐 수 있을까. 그저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낚시를 하며 나는 그런 사람을 꿈꾼다.
낚시가 가르쳐 준 말 없는 대화
침묵은 때로 답답하다. 말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는 상처를 만든다. 그러나 낚시는 그 반대의 침묵을 가르친다. 오해가 아니라 이해로, 거리가 아니라 연결로 이어지는 침묵. 내가 아무 말 없이 낚싯대를 들고 앉아 있을 때, 옆에 누군가 함께 있어도 우리는 아무 말 없이도 통한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말 없는 눈빛 하나에 수많은 감정이 오간다. 그것이 낚시의 대화법이다. 말은 필요 없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가끔 친구와 함께 낚시를 가면 우리 둘은 몇 시간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찌가 흔들리면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서로를 본다. 말 대신 웃는다. 그리고 다시 침묵. 그 속에는 수많은 단어들이 생략되어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기억, 마음속에 쌓인 신뢰, 그리고 어쩌면 이 세상에 대한 비슷한 방식의 감각. 그런 모든 것이 침묵으로도 충분히 전해진다. 강은 여전히 조용하다. 물결이 작은 소리를 내지만, 그것은 소음이 아니라 리듬이다. 나는 그 리듬에 맞춰 호흡을 조절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해가 지고 나면 하늘은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다시 짙은 남색으로 바뀌며 하루의 마지막 빛을 보여준다. 그러면 마음도 조금은 무거워진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무엇을 남겼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도, 그저 이 시간을 이렇게 보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낚시가 끝난 후 빈 손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지만, 마음만은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더 충만하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수많은 감정을 교환하고, 세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세상을 다 잊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을 때, 스스로의 말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 그럴 때 나는 강가로 향한다. 그리고 침묵에 나를 맡긴다. 그러면 어느새 감정의 바위들이 부서지고, 삶의 결이 고요하게 정돈된다. 침묵은 낚시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낚시 그 자체다. 말없이 찌를 바라보는 시간, 아무도 없는 물가에서 혼자 서 있는 순간, 찌가 스르륵 가라앉는 찰나, 입질이 없어도 낚싯대를 꼭 쥐고 있는 인내. 그 모든 것이 바로 침묵을 통한 대화다. 삶이 점점 시끄러워질수록 나는 더 자주 침묵을 찾는다. 마음의 소음을 꺼내 정리할 수 있는 장소, 내면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소. 그게 바로 낚시터다. 사람들은 자주 나에게 묻는다. 그렇게까지 조용한 게 좋냐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답한다. 조용하기에 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고, 말이 없기에 더 진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이제 밤이 깊었다. 저 멀리 마을 불빛 하나가 반짝이고, 달은 강 위에 조용히 떠 있다. 나는 오늘도 낚시를 하며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그 말 없는 하루는 수많은 말보다 더 풍성했다. 침묵의 시간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감정과 생각이 정제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이 침묵은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 것이다. 어쩌면 내 삶의 가장 깊은 이야기는, 이 말없는 시간들 속에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전할 때,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말이 없어 더 좋았던 시간이 있었다고. 낚시가 가르쳐 준 말 없는 대화. 그 시간은 바로, 강변의 침묵 속에서 낚싯대를 들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