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의 대화
세상이 너무 시끄러울 때, 나는 물가를 찾는다. 모든 소리가 물에 닿아 부드럽게 흩어지고, 바람마저도 말을 아끼는 곳. 거기에서 나는 고요를 배운다. 붕어 낚시는 나에게 단순히 고기를 낚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고요 속에서 물결과 찌와 내 마음이 나누는 깊은 대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 자리에 앉는다. 막대를 세워 놓은 듯한 찌 하나, 잔잔하게 퍼져나가는 물결 하나, 이 둘이 서로를 바라보는 듯한 풍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 작은 찌가 물 위에서 느끼는 미세한 움직임은, 어쩌면 내가 하루 동안 느꼈던 수많은 감정의 파장과 비슷하다. 기쁨도, 슬픔도, 불안도, 작은 떨림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러니 나는 찌를 볼 때마다,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처음 낚시를 배울 때는 찌가 흔들리기만 하면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오래도록 이 시간을 겪고 나니 안다. 찌가 흔들린다고 해서 반드시 입질은 아니다. 물결에 흔들리는 것일 수도 있고, 작은 바람이 장난을 친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사람의 마음처럼, 겉으로 보이는 움직임이 진심이 아닐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섣불리 반응하지 않는다. 대신 기다린다. 찌의 떨림이 반복되고, 그것이 단단한 울림이 될 때까지.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러하리라. 누군가의 작은 친절 하나에 모든 마음을 여는 대신, 조용히 그 진심이 자라나는지를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세워두고, 찌를 세워두고, 물결을 바라본다. 때로는 찌가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는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내가 던진 곳이 잘못되었나, 미끼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혹시 내가 이 시간에 이곳에 오는 것이 틀린 선택이었을까.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깊이 숨을 고른다. 물은 말을 서두르지 않는다. 붕어도 조급하지 않다. 기다림은 이곳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고요 속의 대화를 이어 간다. 나는 서서히 마음을 내려놓는다.
물결과 찌, 그리고 내 마음
무엇을 낚을 것인가, 얼마나 낚을 것인가 하는 목표들을 내려놓고, 그저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 자체에 집중한다. 그러면 물결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다. 물이 내 숨결에 닿는 것 같은 순간, 작은 입질이 온다. 물결과 찌, 그리고 내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 찌가 아주 미세하게 끌려가고, 곧 이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때면 손끝이 떨리면서도, 이상하게도 마음은 고요하다. 물결과 찌와 내 마음이 서로 손을 잡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경험은 쉽사리 말로 옮길 수 없다. 그것은 세상의 소음과 속도를 모두 벗어난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한 교감이다. 한 번은 초가을, 잔잔한 저수지에서 붕어를 기다리던 일이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물 위에는 노란 잎들이 떠다녔다. 찌는 한참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가끔 물고기들이 저 멀리서 튀어 오르거나, 물풀 사이로 작은 물결이 일었지만, 내 찌는 무심했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물에 스며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고요가 내 안을 정리해주었다. 그날 나는 단 한 마리의 붕어도 낚지 못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잡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 기다림 그 자체가 나를 다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찌가 물결을 타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인생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삶이라는 강물에 자기만의 찌를 세워두고 살아간다. 때로는 물살이 세게 흐르고, 때로는 바람이 거칠게 분다. 찌는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찌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다. 너무 바람에 흔들려 낚싯대를 무작정 흔드는 것은 오히려 찌를 놓치게 만든다. 삶도 마찬가지다. 작은 동요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 것. 때가 오면, 진짜 입질이 올 것이다. 그걸 알기에 나는 오늘도 고요 속에 앉는다. 물결을 보고, 찌를 보고, 내 마음을 본다. 가끔은 찌가 흔들리지 않아도 좋다. 가끔은 고기가 낚이지 않아도 좋다. 가끔은 그저 물과 대화하며, 내 안의 파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찌와 물결과 내 마음, 이 셋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조용한 울림이 내 삶을 채운다. 붕어를 낚는다는 것은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른다. 진짜로 낚고 싶은 것은 흔들리지 않는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물가에 앉아 조용히 기다린다. 물이 먼저 말을 걸어오기를, 찌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기를, 그리고 내 마음이 그것을 따스히 받아들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