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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지는 강가, 붕어 낚시의 철학

by nambj 2025. 5. 1.

노을 지는 강가에 앉아 있으면 세상의 모든 소음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하루의 고단함을 조용히 어루만지고, 강물 위를 스치는 빛줄기는 마치 오래된 시 한 구절처럼 서서히 내 마음 안으로 스며든다. 나는 낚싯대를 곧게 세우고 찌를 띄운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비로소 라는 존재의 깊은 심연을 만나게 된다. 노을은 늘 변함없는 속도로 세상을 덮어간다. 그 붉은 물결은 시계를 재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멈추지도 않는다. 나는 그 자연의 무심한 흐름을 지켜보며 생각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서둘러야만 했을까. 왜 매일 무언가를 이뤄야 하고, 증명해야만 했을까. 붕어 낚시는 내게 다른 삶의 리듬을 가르쳐줬다. 조급함 대신 기다림을, 소유 대신 관계를, 성취 대신 존재를강가에 앉아 있으면 시간은 사라진다. 시계는 분명 손목에 채워져 있는데, 그것이 아무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된다. 강물의 흐름과 하늘빛의 변화가 내 유일한 시계다. 찌는 물결에 살짝 흔들리고, 바람은 가끔 가지를 흔들며 작은 소리를 낸다. 그런 자연의 숨소리들이, 그 어떤 교향곡보다 웅장하게 다가온다. 붕어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가 이 세계에 속한 한 조각임을 잊지 않게 된다.

 

어릴 때는 붕어를 잡기 위해 낚시를 했었다. 물속에서 힘차게 끌려오는 작은 생명을 손에 쥐었을 때 느끼던 환희. 그것이 낚시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붕어 낚시의 의미는 점점 달라졌다. 이제는 붕어를 잡기 위해 낚시하는 것이 아니다. 기다리는 그 시간, 바람을 맞고 물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속 무언가가 천천히 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낚시를 한다강가의 노을을 보며, 나는 문득 수용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삶에는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붕어가 언제 입질할지 알 수 없듯, 인생 또한 예측할 수 없는 흐름의 연속이다. 그저 최선을 다해 찌를 띄워놓고 기다릴 뿐이다. 붕어가 오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붕어를 기다리는 동안 내 안에 깊게 가라앉은 생각들이 스스로 떠오른다. 때로는 과거의 후회들이, 때로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그러나 나는 안다. 강물처럼 흐르는 이 감정들도 언젠가는 잦아든다는 것을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했다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나에게 붕어 낚시는 그런 의미였다. 바쁜 일상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 조용히 나만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시간.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도시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감각들을 다시 찾는 의식 같은 시간. 노을이 짙어질수록 강가의 공기는 묘하게 달라진다. 낮 동안의 따뜻함은 서서히 식어가고, 물비린내와 젖은 풀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나는 가만히 호흡을 고른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이 세상의 모든 고요를 내 안에 품는 기분이다. 이 순간만큼은 어떤 불안도, 어떤 욕심도 내게 다가오지 못한다. 강가와 나, 그리고 찌 위로 맺힌 작은 물방울 하나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붕어 낚시를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무위의 철학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본질적인 것을 하고 있는 시간. 나를 비우고, 자연과 하나가 되고,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것. 세상의 기준으로는 쓸모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내 삶을 지탱해주는 가장 소중한 시간. 어느새 찌가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가슴이 살짝 뛰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낚싯대를 들어올린다. 작은 저항이 느껴지고, 금세 강물 위로 은빛 붕어 한 마리가 떠오른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붕어를 바라보며 나는 미소 짓는다. 이 한 마리 붕어가 나를 증명해줄 필요는 없다. 다만 오늘 이 시간, 내가 여기에 있었음을, 살아 있었음을, 세상과 맞닿아 있었음을 스스로 느끼게 해줄 뿐이다. 나는 붕어를 조심스럽게 풀어준다. 고요히 물속으로 사라지는 작은 생명. 그리고 다시 찌를 띄운다. 그렇게 다시, 기다림이 시작된다. 찌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생각한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붕어를 잡기 위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수많은 사소한 기쁨과 평화를 느끼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노을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강가는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다. 저 너머로 별빛이 하나둘 고개를 내민다. 나는 짐을 챙기며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하루였다. 세상의 어떤 성공이나 인정보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이 충만함이야말로 진정한 선물이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가방에 담긴 작은 찌와 낚싯대를 생각한다. 그것들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들은 나를 삶으로 이끌어주는 작은 나침반이다. 앞으로도 힘들 때마다, 길을 잃을 때마다, 나는 다시 강가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찌를 띄울 것이다. 노을 지는 강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위대한 시간을 다시 살아낼 것이다. 오늘도 나는 깨닫는다. 인생은 붕어 낚시와 같다는 것을. 기다림 끝에 오는 작지만 진한 기쁨,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담함,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긴 여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