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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그림자에 물든 밤, 낚시꾼의 사유

by nambj 2025. 6. 8.

달빛이 수면 위에 내려앉는 밤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요함을 품고 있다. 그것은 단지 조용하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한층 더 내면의 침묵을 강요하는 어떤 밀도의 공기다. 찌를 바라보다 말고 고개를 들어보면,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은은한 빛이 마치 낚시터 전체를 감싼 듯이 흐른다. 물가에 앉은 나는 더 이상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 어떤 다른 차원의 경계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런 착각은 때로 감정을 해방시키기도 한다. 나는 달빛 속에서 나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더 분명하게 꺼내 보게 된다. 고요한 물 위에 달이 걸리고, 바람이 멎은 밤의 공기는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만든다. 낚시꾼에게 이런 밤은 물고기보다 더 귀한 시간을 안겨준다. 달 그림자는 일정하지 않다. 구름이 지나면 깨지고, 바람이 일면 찢긴다. 그러나 물결이 멈추면 다시 하나로 이어진다. 그 모습을 오래 지켜보다 보면, 인간의 감정도 저 달그림자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불안정하고, 금세 일그러지고, 그러나 다시 회복되는 시간의 흐름. 나는 찌를 지켜보면서도 달 그림자를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내 마음속의 파문을 헤아린다. 그 속에는 말하지 못한 마음, 잊지 못한 사람, 설명하지 못한 슬픔이 있다. 모두가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조용히 떠오른다. 나는 그 그림자 속에서 나의 내면을 바라본다. 물고기보다 먼저 올라오는 것은 언제나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사념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물고기처럼 쉽게 낚이지 않는다. 기다려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끝내 함께 앉아 있어야 한다어느 날 밤, 달빛이 유독 밝았던 그날, 나는 찌를 보던 눈길을 오래도록 떼지 못했다. 이상하게 그 찌 주변으로 달 그림자가 머물고 있었고, 물결이 사라진 듯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생각난 것은 오래전 이별의 장면이었다. 내가 잡지 못했던 손, 잡았어야 했던 말, 흘러버린 시간들. 달빛은 그런 기억을 유도한다. 그것은 어떤 연민이나 슬픔이라기보다, 내 삶의 진실한 단면을 마주보게 하는 힘이다. 나는 찌를 바라보며 되뇌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왜 물러섰고, 왜 침묵했으며, 왜 놓아버렸는가. 그런 질문들이 달 그림자처럼 내 마음에 번졌다. 그리고 나는 답을 찾지 못한 채, 그 감정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낚시는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답이 없음을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낚고 싶어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자기 자신이다.

 

밤이 깊어지면 달은 더 높이 오른다. 그 그림자는 더 뚜렷해지고, 낚시꾼의 실루엣도 길게 늘어진다. 나는 그 그림자와 함께 앉아 있다. 가끔은 내 그림자에게 말을 걸어본다. “너는 아직도 그때의 나를 기억하니?”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모든 것을 말해준다. 고요함은 설명을 대체하고, 침묵은 공감을 대신한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를 실감한다. 그러나 그 외로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끄는 힘이 된다. 낚시터의 밤, 달빛 아래에서의 사유는 그 외로움의 깊이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나는 그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끌어안는다. 그래야만 진짜 감정이 흘러나올 수 있다물결은 천천히 일렁이고, 찌는 그 위에서 미세하게 떨린다. 그것은 어쩌면 감정의 떨림과 같다. 아주 작지만 분명한 흔들림. 나는 그 떨림에 집중한다. 물고기의 움직임일 수도 있고, 그냥 흐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떨림을 경험한다. 감정의 미묘한 변동, 마음의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작고 조용한 충돌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는 그런 떨림을 놓치기 쉽다. 낚시는 그 잃어버린 감각을 되살리는 일이다. 나는 낚시터에서야 비로소 진짜 내 감정을 마주하고, 그것을 온전히 느낀다. 달 그림자는 그것을 도와준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떨림에 귀를 기울이도록 유도한다. 나는 그 흐름에 맡긴 채, 그냥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다밤이 끝나갈 무렵, 달빛은 점점 흐려진다. 안개가 내려앉고, 수면은 다시 흐릿해진다. 찌는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내 마음은 이미 한 차례의 사유를 마친 듯 조용해진다. 나는 그 조용함 속에서 하나의 감정을 정리하고, 또 하나의 기억을 묻는다. 낚시는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을 정돈해준다. 말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물에 흘려보내고, 이름 없는 감정을 달빛 아래에 남겨두고, 나라는 존재의 경계를 다시금 확인한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그 밤의 달 그림자 때문이다나는 낚시꾼이지만, 동시에 기억을 떠올리는 사색자이고, 감정을 꺼내어 놓는 구도자이기도 하다.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행위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달빛이 없는 밤에도 나는 낚시를 하겠지만, 달빛이 있는 밤의 깊이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그 깊이 속에서 나는 자주 울었고, 웃었고,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낚시는 그런 나날을 반복하게 만드는 묘한 중독이다. 찌가 움직이든 말든, 나는 오늘 밤도 달 그림자를 지켜본다. 그 그림자 속에는 내가 놓아주지 못한 감정도 있고, 아직 낚아내지 못한 기억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끝까지 마주하려 한다. 그것이 낚시라는 삶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