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서 보내는 나만의 철학 수업, 낚시가 가르쳐준 것들
나는 종종 물가에 앉아 있다. 누구는 그것을 낚시라고 부르고, 누구는 한가한 취미라고 여긴다. 그러나 내게 그것은 철학 수업이다. 거창한 개념이나 논증이 아닌, 삶의 결을 가만히 따라가는 시간. 물고기를 기다리는 행위 속에서 나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얻기도 하고, 혹은 끝내 대답을 받지 못한 채 되묻기를 반복한다. 낚시는 누군가에겐 손맛을 위한 행위지만 나에게는 존재와 고요, 관계와 기다림, 그리고 끝내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묵상이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찌 하나를 바라보는 그 행위 속에는, 우리가 늘 간과하고 사는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조급함과 욕망을 비워내는 법, 바라보되 붙잡지 않는 자세, 그리고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조차도 받아들이는 능력. 그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 내가 가장 더디게 배웠고, 그래서 가장 오래도록 남은 가르침이다.
사람들은 효율과 즉각적인 반응 속에서 살아간다. 질문을 던지면 바로 검색어로 답을 얻고, 고생은 피하고 싶은 고통이며, 기다림은 실패의 그림자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물가에 앉아 있다 보면,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언제나 느리고 조용하게 다가온다. 사랑도, 이해도, 믿음도 그렇다. 낚시는 그런 시간을 견디는 연습이다. 찌가 움직이지 않는 수 시간의 적막 속에서, 나는 나를 견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생각은 점점 가라앉고, 머릿속에서 들끓던 소란들이 잦아든다. 그것이 바로 철학이다. 진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자리에 잠시 앉아보는 것. 낚시는 늘 그런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하고 있는 듯한 그 시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나는 무엇을 욕망하고 있으며, 그것이 진짜 내 것이 맞는가. 세상은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세상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찌가 대답해주진 않는다. 그러나 그 찌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그 끝에 얽힌 감정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말해준다. 입질을 기다리며 무심히 지난 시간을 더듬고, 떠오른 얼굴을 조용히 기억하며, 혹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들까지도 찌 위에 비추어본다. 낚시는 나의 과거와 화해하는 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잡히지 않는 물고기가 실패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 실패조차도 소중한 깨달음이 된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우리는 조금 더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낚시는 내게 늘 인간다움의 가장자리를 보여주는 경험이었다. 초조와 욕망, 승부욕과 실망, 모든 감정들이 일렁이는 찌의 움직임 안에 담겨 있었고, 나는 그 하나하나를 느끼며 내 안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낚시와 닮아 있다.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순간이 있고, 끝내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흘러가 버리는 인연도 있다. 때로는 진심을 다해 던졌는데 아무 반응이 없고, 가끔은 전혀 의도치 않았던 순간에 무언가가 툭 하고 걸려올라오기도 한다. 그 모든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놓아주는 법을 배운다. 낚시도 마찬가지다. 오늘 이 자리에 고기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오늘의 진실이고,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낚시의 깊이다. 나는 한때 낚시가 주는 이 침묵이 너무 버거워서 멀리 떠났던 적도 있다. 늘 성과와 손맛만을 좇던 시절, 나는 이 고요를 허무로 착각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앉아보니 알게 되었다. 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조용한 것이었다는 것을.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저수지, 그 위에 나 혼자 놓여 있다는 이 느낌은 세상 어느 교실보다 나를 더 깊이 있게 만든다. 낚시는 나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삶을 느리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었고, 고요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용기를 주었다. 찌 하나를 바라보며 내가 생각한 수많은 문장들, 그 속엔 삶과 죽음, 관계와 고독, 희망과 포기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내 존재가 세상과 맺는 방식에 대한 태도였다. 그래서 나는 물가에 앉아 있는 시간이 가장 나다웠다. 말이 아닌 침묵으로, 증명 아닌 수용으로, 주장 아닌 기다림으로 존재하는 그 시간. 나는 낚시를 통해 철학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밤이 오고 물가에 어둠이 내릴 때, 나는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앉아 있다. 붕어가 올지, 아무것도 오지 않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찌불 하나가 어둠을 가르고 떠 있는 그 풍경은, 어쩌면 삶이란 어둠 속에 비치는 조용한 희망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작지만 분명하며, 흔들리지만 꺼지지 않는 어떤 빛. 나는 그 빛을 바라보며, 또다시 삶에 대해 배운다. 그리고 내일도 다시, 이 조용한 철학 수업에 출석하기 위해 물가로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