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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실린 그리움 – 낚시터에서 떠오른 이름 하나

by nambj 2025. 6. 3.

바람이 불어오면 그때마다 나는 너를 떠올린다. 이름 하나, 두 글자였던 그 이름은 어느새 내 기억 속에서 하나의 긴 바람이 되어 흘러들고, 붕어 낚시를 위해 찾은 이 조용한 둠벙 위로 살짝 내려앉는다. 내가 낚시를 하러 오는 이유는 더 이상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오래전에 알아차렸다. 낚시터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도 다정한 고백의 장소가 되었고, 그 안에서 나는 매번 너를 떠올리며 시간을 낚는다. 이름은 바람을 타고 불쑥 불려진다. 그건 때로는 작은 이파리의 흔들림 속에서, 때로는 낚싯대 끝 찌의 미세한 떨림 속에서 찾아온다. 말하지 않아도 너는 이미 내 옆에 있었고, 나는 그 무언의 동행을 받아들이며 찌가 멈춰 있는 저 강물 위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오늘은 왠지 찌가 유독 잔잔하다. 수면은 잔물결조차 일지 않고, 바람도 한참을 머뭇거리다 겨우 한 줄기 지나간다. 그 속삭임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그건 분명 네 목소리였고, 아주 오랜만에 들은 듯했지만 내 귀에는 여전히 익숙했다.시간은 이런 순간에만 뒷걸음질 친다. 첫 낚시를 배웠던 날, 두근거리며 낚싯대를 들고 서툴게 찌를 던지던 그 순간에도 나는 너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아니, 그땐 너를 몰랐기에 너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사람은 언제나 어떤 그리움을 품은 채 살아간다. 그리움은 대상이 아니라 상태이고, 낚시는 그 상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행위였다. 붕어가 물고기를 물기까지의 그 정지된 기다림 속에서 나는 너를 떠올렸다. 아무 변화 없이 흘러가는 시간. 하지만 그 정적 속에도 바람은 있었고, 햇살은 수면 위에 그림자를 그렸다. 바람에 실린 너의 이름이 내 입 안을 맴돌다가 끝내 말로 나오지 못한 채 다시 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걸 나는 몇 번이나 반복했다. 혹시나 해서 입술을 열어봤지만, 그 바람은 너무 빨리 지나갔고, 나는 너의 이름을 한 글자도 붙잡지 못했다.

 

그리움이란 이상하다. 잊혀졌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문득 나타나 마음을 건드린다. 낚싯대를 감고 다시 던지는 그 순간, 물속에서 반짝이는 한 점의 미동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것은 마치 너로부터 온 신호처럼 느껴진다. 단 한 번이라도 네가 내게 돌아오는 것 같아서, 나는 매번 찌가 움직일 때마다 속절없이 설렌다. 하지만 대개는 허공을 친다. 미끼만 사라진 채 낚싯바늘은 텅 빈 채 돌아오고, 나는 알 수 없는 허망함에 가만히 웃어보인다. 사람도, 사랑도, 기억도 그렇게 돌아오지 않는다. 마치 물고기가 아니라 수면에 뜬 달빛을 잡으려는 손짓처럼 헛되지만 아름답다. 나는 이제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너를 기다리던 날들, 너를 그리워하던 모든 조용한 아침과 저녁들.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남은 것이었다낚시를 하며 나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다. 왜 여전히 이 자리에 있는지, 왜 떠나지 못하는지를. 그 질문의 답은 항상 너였다. 너를 기다리고 있었고, 너를 잊지 못했고, 네가 있었던 이 계절을 나는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리움은 사람을 붙잡는다. 그리고 그 붙잡힌 사람은 결국 낚싯대를 드리운 채 스스로를 들여다본다. 나는 낚시를 통해 너를 마주하고, 동시에 나를 바라본다. 물 위에 비친 내 얼굴은 어느덧 너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며, 그저 조용히 머물러 있는 얼굴. 물고기를 낚지 않아도, 나는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너를 다시 만난다. 가끔은 너와 눈을 맞추기도 한다. 그리고 그 눈빛 속에서 나는 우리 둘만이 아는 오래된 풍경 하나를 떠올린다. 손잡고 걷던 강가, 처음 말을 걸던 날, 아니면 마지막으로 등을 돌리던 뒷모습.

 

바람이 또 한 번 불었다. 이번엔 조금 더 강하게, 풀잎들이 휘청이며 지나간다. 그 바람 속에서도 너는 있었다.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향기와 온기와 기억으로 스며들었다. 찌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손에 힘을 줬다가 다시 풀었다. 아니야, 아직 아니야. 너는 오지 않았고, 나는 아직 보내지 않았다. 사람은 그리움을 기다리며 살기도 하고, 그리움을 놓기 위해 살아가기도 한다. 나는 어쩌면 두 가지를 다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오늘 이 낚시는 너를 기다리는 것이었고, 동시에 너를 흘려보내는 의식이었다. 낚싯줄에 걸린 건 물고기가 아니라 내 마음의 일부였고, 그것을 떼어내는 데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가능할 것 같았다. 너를 놓는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수면은 붉은빛으로 물들었고, 바람도 더 따뜻해졌다. 나는 조용히 낚싯대를 감으며 너의 이름을 속으로 불렀다. 단 한 번만,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라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낚시터를 떠나는 길은 언제나 느리다. 일부러 발을 늦춘다. 혹시라도 그 바람이 다시 돌아올까, 이름 하나가 내 어깨를 툭 치고 갈까.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나는 그 이름을 마음속 깊이 담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한참을 돌아보지 않은 채 걷는다. 낚싯줄에 걸린 시간들, 바람에 실린 그리움, 그리고 너. 이제는 모두 나를 이루는 조용한 풍경이다. 다시 돌아오겠지만, 오늘은 너를 조금 더 놓아본다. 그렇게 나는, 다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