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었다. 물결이 일렁였고, 찌는 자꾸만 방향을 잃었다. 평소보다 낚싯대를 조용히 내려두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줄이 휘어졌고, 찌는 떨렸다. 그런 날이었다. 모든 게 바람 탓인 듯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마음이 먼저 흔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찌가 똑바로 서 있지 않으니 입질인지 바람결인지 헷갈렸다. 삶도 그랬다. 무엇이 진짜였는지, 어디까지가 착각이고 어디부터가 진심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던 날들이 많았다. 나는 고요한 수면만을 원했지만, 세상은 늘 바람을 일으켰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바라지만, 현실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흔들리고 뒤틀린다. 낚싯대 끝에서 찌는 흔들리지만 가라앉지는 않는다. 그 작은 중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것을 보며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인생이라는 수면 위에서 나 역시 그렇게 흔들리고 있지만, 아직은 가라앉지 않았다. 바람의 방향을 탓하기보다 찌가 어떻게 중심을 잡고 있는지를 바라보게 된다. 기다림은 지루하지만, 그 안에는 묘한 품위가 있다.
낚시는 늘 그랬다. 누군가에게는 결과 없는 소일거리지만, 나에게는 흐트러진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의식과도 같다. 오늘처럼 바람 부는 날이면 특히 그렇다. 낚싯대를 쥔 손에 힘을 빼고, 마음을 낮추고, 가벼워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시작되는 또 다른 종류의 평화가 있다. 바람은 모든 것을 불확실하게 만든다. 찌가 잠기는 순간조차도 믿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우리는 어떤 신호를 믿고 반응한다. 그것은 낚시꾼의 본능이자,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직관이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우리는 끝내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낚싯대를 들어 올리고, 걸리는 것이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실망일 수도 있고, 기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순간의 망설임이 아니라, 들겠다는 결심이다.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다. 갈대가 흔들리고, 내 마음도 함께 흔들렸다. 이런 날에는 고요를 꿈꾸기보다 흔들림을 이해해야 한다. 세상이 나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 앞에서 흔들리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바람이 두렵지 않다. 낚시는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고요할 때는 고요한 나를, 흔들릴 때는 흔들리는 나를 본다. 찌가 물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내가 어떤 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것을 믿고 있는지 그 시간이 알려준다. 사람들은 흔히 낚시를 외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 외로움이야말로 내가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의 대화는 소통이지만, 자연과의 대화는 침묵 속에서 일어나는 감응이다. 오늘 나는 바람과 대화했다. 저항하지 않고, 부드럽게 흐르며, 그저 그 안에 머물렀다. 바람의 무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마음을 짓누를 때 우리는 그것을 뚜렷이 느낀다. 찌는 물 위에서 늘 그 무게를 견디고 있다. 떠 있으면서도 가라앉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 작디작은 몸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주는지. 나는 그 찌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아무 입질도 없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알 수 없는 평온이 피어났다. 삶은 예측 불가능하다. 바람처럼 갑자기 찾아오고, 또 사라진다. 우리는 그 사이를 살아간다. 어쩌면 낚시란 삶의 가장 정직한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기다리고, 흔들리고, 포기하지 않는 일. 바람 부는 날에도 낚싯대를 펴는 이유는 어쩌면 단 하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을 다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요한 날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흔들리는 날에도 배울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런 날이 더 많은 것을 준다. 고기는 잡지 못했지만, 나는 오늘 내가 어떤 바람에 흔들리는지, 또 무엇을 견디며 살고 있는지를 배웠다. 낚싯대를 거두고 돌아가는 길에도 바람은 여전히 나를 감쌌다. 나는 그 바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흔들려본 자만이 중심을 찾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낚시는 오늘도 조용히,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말 없는 자연이 가장 지혜로운 스승이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