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대를 메고 집을 나섰을 때부터 이미 나는 말보다 침묵을, 움직임보다 머묾을 택한 셈이었다. 바람이 귀를 스치며 지나갔다. 아침 햇살은 아직 강가에 이르지 않았고, 풀잎 끝에는 밤새 매달린 이슬이 반짝이며 날 맞이했다. 늘 가던 자리는 오래된 갈대밭 옆, 큰 버드나무 그늘 아래였다. 그곳은 나만 아는 시간의 틈새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나도 설명하지 않았다. 이따금 지나치는 고라니의 흔적이나, 새벽에 물장구를 치고 간 수달의 자취가 있을 뿐. 나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낚싯대를 펼쳤고, 찌 하나를 강물에 띄웠다. 찌는 강 한가운데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쯤에 멈췄다. 그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마치 내 삶도 어딘가 중간쯤에서 머물고 있는 듯해, 묘한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낚시는 항상 기다림의 예술이라 불린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단지 물고기를 기다리는 일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낚시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지나고, 강물의 흐름이 미세하게 방향을 틀어도,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그냥 받아들이며 그 위에 찌를 띄운다. 억지로 바꾸지 않는다. 그런 태도는 삶에서도 비슷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우리가 아무리 준비하고, 집중하고, 바랄지라도 원하는 결과가 오지 않는다. 물고기가 걸리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생각한다. 그건 내가 무엇인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물고기와 나의 시간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인생도 그런 때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잘 살았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오지 않았던, 혹은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다가왔던 순간들. 낚시는 나로 하여금 그런 무상함을 받아들이게 했다.
강가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정말로 다르게 흐른다. 도시에선 1분이 아쉽고,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게 되지만 여기선 시계가 의미 없다. 해가 떠오르고, 그림자가 이동하고, 바람결이 달라지면 그게 바로 시간의 언어가 된다.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그 떨림의 속도로 하루를 읽는다. 새 한 마리가 물가에 내려앉아 깃털을 다듬고 있을 때, 나는 그 여유에서 존재의 기본적인 리듬을 배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한다. 빨리 하려 하고, 많이 이루려 한다. 하지만 강물은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고, 갈대는 아무도 보지 않아도 바람을 따라 흔들리며 계절을 건너간다. 그 조용한 존재의 방식이야말로 삶이 본래 가지고 있던 형태가 아닐까. 내가 그 속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한 생의 일부가 된 기분이다. 어느새 찌가 살짝 흔들렸다. 나는 기다렸다. 입질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흔들림은 곧 사라졌고,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긴 생각의 물결을 따라가고 있었다. 찌 하나가 흔들린다는 건, 어쩌면 내 마음 한 구석이 아직 세상의 소리에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였다. 나는 얼마나 고요한가, 얼마나 흔들리지 않고 견딜 수 있는가. 그런 물음이 내 안에서 일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불쑥 다가오는 상실, 어쩌다 마주치는 불안한 시선, 모두가 내 찌를 흔드는 바람이었다. 그중 어떤 건 흘려보낼 수 있고, 어떤 건 반드시 대응해야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찌를 들 때를 알고 있다는 것이고, 그 순간까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거였다. 이건 단지 낚시의 기술이 아니라, 삶의 기술이었다.
햇살이 강가를 물들였다. 물결이 햇살을 품고 은빛으로 반짝였고, 새들이 높이 날았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내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고, 생각은 조금 더 단순해졌으며, 무엇보다도 존재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이 강은 나를 평가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물고기를 잡았는지 묻지 않았고, 어제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이곳에 앉아 있는 것 자체로 충분하다는 듯 품어주었다. 그런 공간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런 공간이 된다는 건 더 큰 축복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고요한 강이 되고 싶었다. 말없이 곁에 있어 주고, 흔들림을 품어주는 존재. 그것이 내가 낚시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었다. 오늘 나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많은 것을 얻었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 침묵의 파편들, 존재의 잔향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은 기록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나를 변화시킨다. 강가를 떠날 때 나는 항상 조금 더 나다워져 있다. 마치 오래된 자신을 한 겹 벗겨낸 듯한 기분. 낚시는 매번 그 탈피의 시간을 조용히 허락한다. 나도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변화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매 순간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고, 그 흐름 안에서 나는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다. 흐름은 미련을 품지 않는다. 그것이 낚시의 진리요, 삶의 진리다. 나는 그 진리를 오늘도 배우며 돌아간다.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고, 강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갔다. 나는 그 속에서 고요히 머무르며, 다음 만남을 기다린다. 강가의 바람처럼,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