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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낚시와 기다림의 미학(서두르지 않는 시간)

by nambj 2025. 5. 10.

붕어 낚시와 기다림의 미학

기다림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붕어 낚시와 함께 따라다녔다. 어쩌면 기다림이 없었다면 붕어 낚시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른 아침,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은 풀밭을 지나 낚시터에 다다른다. 물가에 서서 조심스럽게 대편성을 하고, 찌를 세우고, 가만히 앉는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낚시가 시작된다. 하지만 실은, 낚시는 찌를 세운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참 전, 이 물가에 오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안다. 기다림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붕어 낚시는 급할 것이 없다. 찌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소란과 분주함은 이곳에 닿지 못한다. 나는 시간의 흐름을 잊고 찌를 바라본다. 찌는 바람결에 따라 살짝 흔들리기도 하고, 가만히 숨을 죽이기도 한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쏠린다. 그러나 대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도, 물결만 지나가고 붕어는 소식이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눈을 감고 바람 소리를 듣는다. 풀벌레 우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그리고 나뭇잎 스치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세상의 소란이 아닌 고요의 일부로 다가온다. 기다림 속에 몸을 맡기면,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시작한다. 세속의 시간은 분 단위로 끊기지만, 낚시터의 시간은 마음의 리듬에 따라 느리게 흘러간다. 붕어는 그런 시간을 안다. 그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먹이를 향해 돌진하지도 않고, 급하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붕어는 언제나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먹이를 물어도 바로 삼키지 않고 한참을 살핀다. 입에 머금었다가 토하기도 하고, 다시 다가와 망설이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사람에게도 인내를 가르친다. 기다림 없는 낚시는 없다. 붕어는 기다릴 줄 아는 자에게만 자신을 허락한다. 처음 낚시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이 기다림이 괴로웠다. 찌를 바라보며 몇 번이고 한숨을 쉬었고, 작은 움직임에도 조바심을 냈다. 왜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붕어 낚시는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다림 자체를 위한 것이라는 걸. 기다림 속에 스스로를 다듬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진짜 낚시라는 걸. 붕어는 그런 나를 거울처럼 비추어주었다.

서두르지 않는 시간

기다림 속에 들어설 때, 인간은 비로소 자연과 한 몸이 된다. 바람의 흐름, 물의 결, 붕어의 움직임, 그 모든 것이 내 호흡과 하나가 된다. 나는 찌를 보면서도 동시에 나를 본다. 나의 조급함, 나의 욕심, 나의 불안. 그것들이 모두 찌 끝에서 드러난다. 조급할수록 찌는 움직이지 않는다. 욕심낼수록 붕어는 멀어진다. 결국 기다림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바람이 조금 따뜻해진다. 여전히 찌는 별 움직임이 없다. 그러나 나는 초조하지 않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받아들인다. 가끔은 찌가 꿈틀할 때도 있지만, 그마저도 조용히 지켜본다. 붕어가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나는 억지로 손을 뻗지 않는다. 붕어 낚시는 강요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 어느 순간, 찌가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그것은 번개처럼 빠른 입질이 아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한 움직임이다. 나는 숨을 죽이고 낚싯대를 든다. 손끝에 전해지는 생명의 떨림, 그것은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선물이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나는 몇 시간을 앉아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 몇 초를 위해 왜 그렇게 긴 시간을 버리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긴 기다림 속에서 나 자신을 다듬고, 자연과 대화하며, 조용히 존재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붕어를 잡든 못 잡든, 나는 이미 충분히 얻었다. 기다림이라는 시간 속에서.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인다. 모두가 앞다투어 달리고, 결과를 재촉한다. 하지만 붕어 낚시는 여전히 느리고 고요하다. 붕어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서두르지 않는다. 붕어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시간의 주인이 된다. 초조하지 않고, 조급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기다림은 붕어 낚시의 본질이자, 삶의 본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기다리는가. 사랑을, 성공을, 기쁨을, 치유를. 그 모든 기다림 속에는 인내와 신뢰가 필요하다. 그리고 붕어 낚시는 그 기다림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가르쳐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낚시터로 간다. 특별한 기대 없이, 조용히 대편성을 하고 찌를 세운다.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고, 새소리가 들리고, 풀벌레가 운다. 그리고 나는 가만히 기다린다. 붕어가 올 때까지. 아니, 어쩌면 붕어가 오지 않아도 좋다. 기다림 자체가 이미 나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붕어 낚시는 기다림을 통해 나를 완성시킨다. 붕어와 함께, 시간과 함께, 세상과 함께. 서두르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