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낚시, 고요함 속의 울림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었지만 굳이 접어두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비가 나를 낚시터로 부르는 듯했다. 세상은 젖어가는 풍경 속에서 더 깊어지고, 사람은 젖을 때 비로소 마음이 드러난다. 비 오는 날의 낚시는 어쩌면 그런 마음을 드러내기 위한 어떤 고백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산보다 커다란 우비를 챙기고, 비닐로 감싼 낚싯대며 장비를 자동차 트렁크에 조심스레 옮기고 있을 때, 나는 이미 절반쯤 물안개 속에 들어가 있었다. 비 오는 날의 낚시는 사람을 고독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독을 품어주는 침묵의 음악이 흐르는 자리다. 도착한 저수지는 이미 축축하게 젖은 갈대와 나뭇가지들이 푸른 비의 선율에 몸을 흔들고 있었다. 비는 가늘고 일정하게 내리고 있었고, 나는 그 비 속으로 스며들 듯 자리를 잡았다. 낚싯대를 펼치고, 찌를 던지는 동안에도 말이 없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낚싯대의 감촉,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그리고 그 위에 얹히는 나의 호흡이 묘하게 하나로 이어졌다.
빗소리는 낚시의 소음들을 모두 삼켜버린다. 찌가 살짝 흔들릴 때 나는 마음으로 그것을 느낀다. 그 조용한 움직임은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더없이 나 자신과 가까워진다. 빗방울은 내 우비를 두드리고, 물 위를 두드리고, 마음의 겉껍질까지 천천히 두드려서 안으로 스며든다. 그렇게 빗소리로 가득 찬 낚시터 한가운데에서 나는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세상의 많은 일들로 흐트러진 감정들,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일상의 피로, 사람들과의 어긋남, 그리고 어쩌면 말하지 못한 외로움까지, 빗물 속에서 묵묵히 씻긴다. 나는 낚시를 하러 왔지만, 사실은 비를 맞으러 온 것인지도 모른다. 낚시는 그저 핑계일 뿐, 나는 나를 데리고 이 고요하고 서늘한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가끔 찌가 물결에 휘청거리다가 빗속에 잠기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낚싯대를 들어 올리며 물고기의 생생한 저항을 느끼는 그 찰나, 나는 세상과의 연결을 느낀다. 물 아래에 있던 생명이 비를 뚫고 올라와 내 손끝에 닿고, 나는 다시 그 생명을 물로 돌려보낸다. 그것은 포획이 아니라 만남이다. 잠깐의 대화, 짧은 교감, 그리고 곧이어 다가오는 이별. 그러고 나면 마음이 이상하게 정리된다. 잡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다렸으나 오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다는 걸 배운다. 낚시란 결국, 비 오는 날의 낚시는 특히 더 그렇지만, 오히려 그 기다림의 끝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그 자리에 머무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비는 점점 더 굵어졌고, 나는 잠시 우산을 펴지 않은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온몸이 젖어가면서도 오히려 더 편안했다. 물기 머금은 공기가 폐 속 깊숙이 들어오고, 그 차가운 기운이 나의 속을 정화해주는 느낌이었다. 삶이란 애초에 젖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엔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린다며 도망쳤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비에 스스로를 내맡기고 싶어진다. 감기보다 더 깊은 어떤 울림이 비 속에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낚시는 그렇게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물과 하늘과 비와 나, 그 사이의 찌 하나가 만들어내는 조용한 시간은 철학이 되고 시가 되고, 때로는 가장 진실한 고백이 된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낚시도 떠오르고, 이제는 떠나간 지인들의 기억도 떠오른다. 모두 비 속에서 흐릿한 실루엣으로 다시 다가온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고, 그저 함께 있는 것처럼 묵묵히 찌를 바라본다. 그렇게 비 오는 날의 낚시는 오래된 기억의 책장을 천천히 넘겨주는 일이다. 젖어가는 낡은 페이지들 사이로 나는 과거의 나를 만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 언젠가 이 자리에서 다시 비를 맞으며,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이 기다림의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오늘의 이 젖은 순간을 조심스레 간직한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고, 나는 그 안에 조용히 머물렀다. 낚시란 삶에 대한 수긍이고, 비 오는 날의 낚시는 그 수긍에 대한 고요한 예배다. 누구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나를 마주하고, 물과 비와 바람 앞에 스스로를 내어주며, 말없는 사색에 잠긴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기다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물고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 깊숙이 들어가는 그 시간 자체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언제나 고요하게, 그러나 아주 깊은 울림으로 나를 적신다. 오늘, 이 비 오는 낚시터에서 나는 또 하나의 나를 만나고, 잊고 있던 감정의 결들을 다시 쓰다듬는다. 그렇게 낚시는 언제나 물고기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우리 손에 쥐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