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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과 멈춘 마음, 시간 위에 앉아 낚시하다

by nambj 2025. 5. 13.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만 흐른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는 종종 낚싯대를 들고 흐르는 강가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마치 멈춘 듯한 착각을 하곤 한다. 찌 하나가 물 위에 잔잔히 떠 있는 그 정적의 순간, 초침도 멎은 듯이 느껴지고, 머릿속을 채우던 바쁜 생각들도 저절로 잦아든다. 그럴 때 나는 문득 깨닫는다. 삶이란 반드시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물은 흐르지만, 나는 고요히 머무르고, 그 머무름 속에서 비로소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찾는다. 누구나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느끼는 날들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무엇이 옳은지도 분간하기 어렵고, 모든 선택이 뒤늦은 후회로 돌아오는 것 같을 때. 나는 그런 날이면, 아무 말 없이 낚시터로 향한다.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걸으며, 마음이 걸린 무수한 매듭을 하나씩 풀어내듯 천천히 그 길을 따라간다.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고, 멀리서 철새들이 떠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낡은 나무 다리 위로 내리는 발자국 소리만이 귓가에 맴돈다. 도시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리듬, 그것이 이 자연의 시간이다.

나는 낚시를 하며 시간과 화해했다. 젊은 날의 나는 늘 앞서가려 했다. 더 빨리, 더 멀리, 남들보다 먼저. 그러나 그 조급함은 나를 어디로도 데려다주지 못했다. 오히려 점점 더 나를 놓치게 만들었다. 낚시는 그런 내게 속도의 무의미함을 가르쳤다. 물고기는 내가 원할 때 물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욕심을 내려놓고, 조용히 찌를 바라볼 때, 물속 어딘가에서 슬며시 다가온다. 기다림의 미덕이란 단지 고통을 견디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다림 속에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찌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동안 나는 나의 과거를 되짚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그려보고, 그 모든 생각의 끝에서 결국 오늘을 바라보게 된다. 오늘이라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일. 그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걸 낚시가 일깨워준다.

지금 내 앞의 강물은 쉬지 않고 흐르지만, 나는 그 흐름과 함께 있되, 그 흐름에 쓸려가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삶을 견디는 태도라고 나는 믿는다. 어쩌면 낚시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연습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시간을 사랑하는 일. 그래서 나는 낚시터에서 눈을 감고 있는 시간마저도 낭비라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엔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고, 움직임보다 더 깊은 감각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낚시가 단지 물고기를 잡는 재미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의미는 조금씩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물고기보다 더 많은 것들을 그 수면 위에서 건져 올리고 있다. 그건 삶의 조각들이고, 마음의 울림이고, 잊고 살던 나의 목소리다.

한 번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뒤였기에 비를 피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낚시의 고요함과 빗소리가 겹쳐지는 그 순간, 나는 세상의 모든 소란이 하나의 리듬으로 합쳐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빗방울이 낚싯대에 떨어지고, 찌 주변에 동그란 파문이 퍼지고, 내 옷이 젖는 그 촉감까지도 살아 있는 듯 느껴졌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만 믿는 걸까. 왜 ‘그냥 있는’ 상태를 불안하게 여길까. 낚시는 그 질문에 조용히 대답해준다. “존재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그 깨달음 하나로 나는 삶의 많은 무게를 덜 수 있었다.

물속은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깊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안쪽 어딘가에서 물고기는 머물고 있고, 나는 그 물속을 상상하며 찌를 바라본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겉으로 보이는 표정이나 말 너머에,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고, 드러나지 않은 감정들이 숨어 있다. 낚시를 하며 나는 그런 마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타인의 침묵도, 무심함도, 어쩌면 다 말 못할 사정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고. 세상의 모든 고요함은 의미 없는 공백이 아니라, 말을 다하지 못한 진심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낚시는 내게 사람을 이해하는 눈도 함께 길러주었다.

어느 순간 찌가 스르르 기울더니 물속으로 사라졌다. 천천히 낚싯대를 들어 올리니 작은 붕어 한 마리가 딸려 올라왔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눈이 맑은 붕어. 나는 그 붕어를 바라보다가 이내 물로 다시 놓아주었다. 그 작은 생명 하나를 들었다가 놓는 짧은 시간 속에, 삶의 무게가 스쳤다. 잡고 싶고, 갖고 싶고, 지키고 싶은 마음이 모든 고통의 시작이라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더 자주 놓아주려고 한다. 물고기를, 미련을, 지나간 시간을. 그렇게 놓아줄 때 비로소 나도 가벼워진다. 그리고 그 가벼움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멀리 걸어갈 수 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강물 위에 퍼지고,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나는 천천히 짐을 정리하고 자리를 떴다. 오늘 하루도 낚시를 하며 많은 것을 건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많이 얻은 날이었다. 사람은 때때로 멈추어야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나는 낚시터에서 배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충만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조용한 수면 위에서 깨달았다. 삶은 결국 그 깨달음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낚시는 그 깨달음과 조용히 마주하는 한 방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