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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에 대하여, 낚싯대를 쥔 손끝의 삶 모든 낚시는 기다림에서 시작되지만, 그 기다림이 품고 있는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지친 삶의 휴식이요, 누군가에게는 외로움과 대면하는 시간이다. 나에게 낚시는 늘 ‘무게’에 대한 성찰로 다가왔다. 찌가 가라앉고, 릴을 감아올리는 순간, 그 끝에 무엇이 매달려 있든 그것을 끌어올리는 손끝의 감각은 곧 내 삶의 무게를 가늠하게 한다. 어떤 날은 그 무게가 지나치게 가벼워 허무하고, 어떤 날은 너무 무거워 견딜 수 없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물고기와 함께 삶의 조각을 당기며, 그 무게를 손끝으로 짚어본다. 오늘도 나는 낡은 릴을 챙겨 어김없이 물가로 향했다. 바람이 조금 차고, 물빛이 묘하게 흐려지는 시기였다. 이맘때쯤이면 강은 고요 속의 떨림을 품는다. 나는 늘 그런 미묘한 긴장을 좋아했다... 2025. 6. 4.
빈자리의 물결(낚시터에 앉아 누군가를 떠올릴 때) 바람이 불었다. 계절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믿기엔 어딘가 머뭇거리는 공기였다. 그런 날엔 이유 없이 마음이 저릿해지고, 손끝이 예민해진다. 나는 그날도 늘 그렇듯 낚시터로 향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붕어가 잘 잡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니고, 좋은 자리를 미리 알아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무언가가 나를 그쪽으로 이끌고 있었고, 나는 별다른 저항 없이 그 흐름에 몸을 맡긴 것이다. 강변으로 향하는 길은 조용했다. 차창 밖 풍경이 멈춘 듯 흐르고, 나무들은 가만히 바람을 머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낚싯대를 짊어진 채 걷는 뒷모습을 비춰줄 사람도 없었고, 오늘 하루 어땠는지를 묻는 목소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날이었다. 그저 낚싯대를 세우고, 찌 하나 띄우고, 흐르는 시간에 나를 맡기는.. 2025. 6. 4.
잊혀진 이름들(강가에 흘려보낸 기억) 처음 그 자리에 앉았던 날을 기억하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 강가가 처음이었는지, 그 자리가 익숙해서 앉았던 건지, 혹은 누군가와 함께였는지조차 흐릿하다. 다만 그 자리에 앉았던 내 등이 차가운 바람을 받았다는 것과, 물가에 흔들리던 갈대 사이로 익숙한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는 것만은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름들을 기억하고, 또 얼마나 많은 이름들을 잊고 사는가. 이름이라는 건 그것을 부르던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생명을 얻는다고 믿는다. 더는 아무도 부르지 않는 이름은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라고, 나는 그날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낚싯대를 드리우며 물가에 앉아 있을 때면 자주 그런 생각들이 밀려든다. 강물은 모든 것을 흘려보내지만, 가끔은 무엇인가를 거슬러 데려오기도 한다. 그날도 그랬.. 2025. 6. 3.
바람 속의 존재(강가에서 배우는 무상함) 낚싯대를 메고 집을 나섰을 때부터 이미 나는 말보다 침묵을, 움직임보다 머묾을 택한 셈이었다. 바람이 귀를 스치며 지나갔다. 아침 햇살은 아직 강가에 이르지 않았고, 풀잎 끝에는 밤새 매달린 이슬이 반짝이며 날 맞이했다. 늘 가던 자리는 오래된 갈대밭 옆, 큰 버드나무 그늘 아래였다. 그곳은 나만 아는 시간의 틈새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나도 설명하지 않았다. 이따금 지나치는 고라니의 흔적이나, 새벽에 물장구를 치고 간 수달의 자취가 있을 뿐. 나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낚싯대를 펼쳤고, 찌 하나를 강물에 띄웠다. 찌는 강 한가운데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쯤에 멈췄다. 그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마치 내 삶도 어딘가 중간쯤에서 머물고 있는 듯해, 묘한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낚시는 항상 기다림의.. 2025. 6. 3.
고요라는 이름의 호수(낚시터에서 마주한 나)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질 때 나는 낚시터를 찾는다. 고요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늘 조심스럽고 느리다. 사람들은 말한다. 낚시는 인내의 취미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낚시는 침묵을 이해하는 예술이라고. 오늘도 나는 그 예술 속으로 조용히 몸을 담갔다. 이른 새벽,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에 도착한 호수는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고요했다. 짙은 안개가 수면 위를 감싸고, 그 위로 나뭇가지 하나 드리워진 풍경은 마치 한 편의 수묵화처럼 다가왔다. 손끝이 얼얼해질 정도로 찬 공기 속에서도 나는 조용히 의자에 앉았고, 낚싯대를 조심스레 들어 찌를 던졌다. 물살 하나 없는 그 수면 위에 찌가 떨어지는 소리는 사방의 정적을 깨는 유일한 소리였고, 그 순간부터 나는 다시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낚시는 누군.. 2025. 6. 3.
바람에 실린 그리움 – 낚시터에서 떠오른 이름 하나 바람이 불어오면 그때마다 나는 너를 떠올린다. 이름 하나, 두 글자였던 그 이름은 어느새 내 기억 속에서 하나의 긴 바람이 되어 흘러들고, 붕어 낚시를 위해 찾은 이 조용한 둠벙 위로 살짝 내려앉는다. 내가 낚시를 하러 오는 이유는 더 이상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오래전에 알아차렸다. 낚시터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도 다정한 고백의 장소가 되었고, 그 안에서 나는 매번 너를 떠올리며 시간을 낚는다. 이름은 바람을 타고 불쑥 불려진다. 그건 때로는 작은 이파리의 흔들림 속에서, 때로는 낚싯대 끝 찌의 미세한 떨림 속에서 찾아온다. 말하지 않아도 너는 이미 내 옆에 있었고, 나는 그 무언의 동행을 받아들이며 찌가 멈춰 있는 저 강물 위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오늘은 왠지 찌가 유독 잔잔하다... 2025. 6. 3.